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은 사람들은 이 책 <나의 코스모스> 표지를 단번에 알아볼 겁니다. 1974년 발송된 아레시보 성간 메시지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으로, <코스모스> 12장 은하 대백과사전에 실린 도판입니다. 사실 전 그림만 알아봤지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다시 책을 찾아보고서야 기억했습니다. 강연의 말미에서, 은사에게 득녀 소식을 알렸을 때 받은 답변을 현재 서울대 교수인 제자가 읽어줍니다. 제가 평소에 살면서 느꼈던 인간에 대한 신비와 감동을 축약해놓은 것 같아 눈물이 났기에 여기에 옮깁니다. "아이를 키울 때 아이에 대한 고마움, 곧 하느님께 드려야 할 감사함을 몰랐습니다. 그저 힘이 든 것만 느꼈지. 아이들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기쁨의 깊이와 진함과 짜릿함을 의식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미숙했습니다. 참 묘해요. 우리네 미성숙한 인간들이 아기를 성숙의 과정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게. 생명의 무서움. 300만 년에 걸친 시행착오의 결과가 생명에게 이렇게 가늠할 수 없는 능력을 부여했나 봅니다. 내 삶을 사는 건 그래서 그만큼 무섭고 귀한 것이기에 부서지도록 굳게 껴안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저는 저의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게 해준 인생책으로 <코스모스>를 주저하지 않고 꼽습니다. 감동과 신비에 젖어 그 책을 읽을 당시 또다른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것은 번역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과학서와는 달리 너무나도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 그래서 저는 당연히 천문학교수의 1차 번역을 다른 전문가가 윤문한 줄 알았습니다. 와, 처음부터 새로 쓴 것도 아니고 남이 이미 쓴 글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고쳐놓았지?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지만 3분의 2 지점쯤에서 그 생각을 흔들어놓은 표현을 보았습니다. 정말로 홍승수 교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했음을 짐작하게 해준 그 표현을 보고는 잠이 오지가 않았죠. 너무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번역자에게 확답을 듣기 위해 이리저리 검색해 직접 전화를 걸어 여쭈었습니다. 사실 기대했던 대답에 환호하긴 했지만 그 당시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 원장으로 계시던 홍승수 교수는 황당하셨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왜 그런 대단한 문장력으로 대중서를 쓰시지 않냐고 했었는데 나중에 소장용으로 구입한 양장본 코스모스>에는 다양한 저서들이 나와있어 죄송스럽고 민망했습니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본 보급판에는 실려있지 않았기에 모르고 저지른 실수이긴 하지만... <날마다 천체물리>를 읽으며 <코스모스>를 생각하고, 그 아름다운 문장의 번역가를 생각하며 동시에 출간을 진작에 알고 있었던 이 책 <나의 코스모스>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빌려왔죠. 한편으로는 위계질서가 강한 대학 사회에서, 수십년전임에도 불구하고 교수가 모든 복사를 직접 하고 아랫사람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킨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통이 이어져 서울대 천문학과는 다른 곳에서 흔히 일어나는, 교수가 대학원생을 착취하는 그런 일들이 없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학자들 중 천문학자가 가장 겸손하다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이 광막하고 거대한 우주 앞에서 인간의 존재를 하염없이 작게 느낄 수 밖에 없어서라는데, 그러면 서울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의 천문학과도 그렇다는 걸까요? 이건 흥미있는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오늘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혼자 앉아 계속 울었습니다. 너무 가슴 아프고 황망하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어젯밤 어떤 분의 고마운 댓글로 홍승수 교수님이 별세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엔 믿어지지가 않았고 이 무슨 나쁜 장난인가, 싶었지요. 불과 1년 전 출간된 책을 읽었었고 투병중이시라는 걸 몰랐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나의 코스모스>를 읽고 교수님께 메일을 드리려고 연락처를 검색해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출판사에 연락해야겠다,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될줄이야. 오래 전이긴 하지만 전화 끊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급작스럽게 전화드려 혼자서 흥분한게 죄송스러웠고, 왜 대중서를 쓰시지 않았냐고 엉뚱한 얘기를 한 것도 송구했었습니다. 제가 교수님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인해 우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싼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미물인지, 그럼에도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들을 이루어낸 인간이 얼마나 대단하고 신비스러운 존재인지 깨닫고 매일매일이 새롭다는 것을 알려드리며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게 해준 <코스모스>. 누가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단연코 제 인생책으로 꼽는 <코스모스>의 감동은 그 유려한 문장이 아니면 그 정도까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쓴 <날마다 천체물리>의 신간 기사를 보았을 때도 바로 역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원로 천문학자의 번역도 매끄럽다."라는 문장이 있었거든요. 이 <나의 코스모스>는 2016년 5월 과학을 주제로 한 대중강연을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이 얇은 책에는 <코스모스> 번역의 비하인드 스토리, 각 13장의 요약, <코스모스>의 엄청난 성공 원인, 우리 교육의 문제, 악독한(?) 교수였던 저자의 제자들이 밝히는 추억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극소수의 정예를 키우느라 악독해질 수 밖에 없었다는 노학자의 고백은, 우리나라 천문학자의 논문 피인용 지수가 미국을 1이라고 잡았을 때 0.96이라는 대단한 결과에서 그 빛을 발합니다. 미국이 천문학에 투자하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생각해보면 더 믿을 수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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